개인주의자 선언

부장판사가 과장판사보다 그냥 높은 판사인가보다 할 정도로 판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

어쩌면 약간 뻔한 내용이지만 그래서 더욱 설명없이 적어놓고 되새김질 할만한 내용만 기록해본다.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에 관한 원칙인 존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기 위한 불평등은 정의에 부합한다고 하여 실질적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외국의 문화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약간 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평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건 20대 시절부터 느끼던 것인데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지겠지만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정의는 실질적 평등이 중요한 것이고 그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발전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문제라면 나는 이왕이면 발전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싶다.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법조계가 어떻게든 큰 흐름에서는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표현하기 위해서 쓴 내용이지만 나는 마지막 글귀가 와 닿았다.

생각없는 냉소로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얼마나 많은 똑똑한 사람들의 냉소가 나를 힘들게 했던가… 이제는 씩 한번 웃어줄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켠은 아리다.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이 주장인지’로 광속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 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생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한 골치아픈 길을 피하고 손쉬운 길을 택하는 행태는 비단 이념 문제뿐 아니라 학교, 사회, 가정에서 늘 발견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깨어 있으려고 노력을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한 점 티끌없이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이제 인간에 대한 폭력을 넘어 동물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해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혹자들은 이를 비현실적인 호들갑이라고 여기지만,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범위를 나, 가족, 부족, 계급, 성, 인종, 국적의 범위를 넘어 계속 넓혀온 역사가 바로 인간이 폭력적인 본성과 싸워온 과정이다. 어느 시대에나 타자의 고통에 대해 가장 예민한 이들, 가장 ‘호들갑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길거리에서 타살당할 염려 없이 이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창작자보다 평론가가 많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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