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주 – 당신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4000주

패배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이 모든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인정하는 것이 인간에게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어떤 일에 시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건 곧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들을 포기한 것이다. 다른 것들을 포기했다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이메일은 넘쳐나는 메시지에 즉각 응답할 수 있는 탁월한 도구지만, 이메일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그런 메시지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은 결국 ‘우리를 실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정복하려는 ‘모든 것’의 크기를 한없이 키워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나 다른 사회적 활동을 달력에 적어 넣을 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기 위해 기존의 다른 항목을 지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희생해야 한다. 해야 할 일 중에서 어떤 것을 희생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지 않는다면,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사소하고 따분한 일만을 하게 될 것이다.

심리학자 티모시 윌슨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는 주어진 순간에 뇌에 들어오는 정보의 약 0.0004퍼센트에만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말하자면 디지털 기기가 우리가 더 중요한 문제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중요한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말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우리의 능력을 방해한다.

우리는 계획을 마치 현재로부터 미래 주위에 던져진 올가미처럼 취급해 내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구현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라는 현재의 의사 표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계획이란 미래에 대한 미미한 영향력을 스스로 어떻게 행사하고 싶은지 지금의 생각을 투영한 것뿐이다. 당연히 미래는 그것을 따를 의무가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은 1955년 ‘파킨슨의 법칙’으로 알려진 자신의 가설을 정립하며 “작업은 주어진 시간이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늘어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며, 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이 법칙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된다.

나는 매일 수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삶을 만들어나가는 동시에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을 영원히 차단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정하다(decide)’라는 뜻의 라틴어 descidere는 대안을 ‘잘라내다(to cut off)’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homicide(살인)’나 ‘suicide(자살)’등의 단어와 사촌 격이다.) 제아무리 최고의 인생을 머릿속에 그려본다고 해도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삶이란 결국 수많은 가능성에 작별인사를 하는 일의 연속이다.

베그르송은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하는 미래는 하나같이 다 매력적이고 다양한 모습이기 때문에” 한 가지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언제나 우유부단한 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게르첸은 “아이들은 성장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의 목적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의 목적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자연은 단 하루만 지속되는 생명이라도 그 생명을 멸시하지 않는다. 그 생명은 자신이 사는 그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 인생의 풍부함은 그 흐름 속에 있다. 나중에는 너무 늦다”라고 게르첸은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여가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적어도 여가의 일부를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낭비하며’ 보내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암암리에 이도 저도 아닌 미래지향적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기보다 푹 쉬라는 것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모든 여유 시간을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빈둥거림은 용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활동들, 다시 말해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활동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일을 얼마나 빠르게 진행할 것인지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불안감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멈추게 되고 불안감은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된다. 서두를 수 없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파고드는 것은 스트레스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본인의 선택에 있어 대담해지는 행동이 되기도 한다. 어려운 소설을 읽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문제’라는 것은 무엇일까? 문제란 일반적으로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런 요구가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포기하는 순간 인생이란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해결하는 과정이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의미 있는 존재에 결함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문제란 존재의 본질 그 자체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우리가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우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천 주라는 놀라운 선물을 온전히 즐기겠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정반대다. 추상적으로 지나치게 소모적이며 비범한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부적절한 것들에 반대하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우주적 의미의 신과같은 환상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유한한 삶의 경험으로 차분히 돌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
 1. 현재 삶이나 직장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곳은 어디인가?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 가능한 한 편안한 소모보다 불편한 확장의 기회를 선택하라.
 2. 절대 이룰 수 없는 생산성이나 성과 기준을 고수하고, 스스로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가? → 불가능한 기준을 박살낸 후, 그중 몇 가지 의미있는 일들을 선택하라. 그리고 오늘 당장 그 의미 있는 일들을 시작해보자.
 3. 어떤 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가? → 일정 나이에 이르면, 놀랍게도 그 누구도 내 인생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될 때까지 머뭇거리게 되는 삶의 영역은 어떤 것인가?
 5. 결과물을 내야 하는 부담이 없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 우리는 모두 중세 석공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죽기 전에 완성물을 미처 볼 수 없는 대성당에 벽돌을 묵묵히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성당은 여전히 지을 가치가 있다.

‘다음으로 옳은 일을 하라 Do the Next Right Things’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방법 10
 1. 동시에 진행하는 작업의 수를 제한하기
 2. 할 일을 목록화하기
 3. 무엇을 실패할 것인지 미리 결정하기
 4. 해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미 완료한 일에 집중하기
 5. 관심을 통합하기
 6. 단일 목적 기기를 사용하며 지루함을 이겨내기
 7. 일상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기
 8. 인간관계를 연구하기
 9. 관용적 행동을 즉각 실천하기
 10.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하기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