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정말 이렇게 폭넓은 영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유발 하라리의 책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 생각들 하나하나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이고 박식한 전개로 설득력이 있다고 끄덕이게 된다.

현명하게도 아주 명확한 결론을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않을까?라는 정도의 결론들인데, 종종 다시 읽어서 영감을 얻어야겠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데 훨씬 뛰어났다.

노동계급 혁명을 하려던 공산주의의 계획은 시대착오가 됐을지언정,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냄새를 맡고 맛보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왔다.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정체성은 일치보다 갈등과 고민으로 규정된다. 2018년에 유럽인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피부색이 희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민에 관해, 유럽연합에 관해, 자본주의의 한계에 관해 격렬히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고, 고령화와 만연한 소비주의,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갈등과 고민의 측면에서 볼때 21세기 유럽인은 1618년, 1940년 선조들과는 다른 반면, 중국와 인도 같은 교역 상대국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줄어들고 있는 반면, 오늘날 세계는 ‘문화주의자들’로 가득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고 마침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인의 합리성이 아니라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 덕분이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 유지를 편드는 것이다.

다만 적어도 당신이 거부하는 과학 이론을 알아야 하고,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경험적 증거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우리 자신의 운영 체계를 더 잘 알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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