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근무… 오래된 고민
원격 근무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은 정말 오래전부터였다. 의정부에서 인천으로 출퇴근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항상 1시간 30분이 넘는 출근 길을 다니던 나로서는 원격근무라는 단어가 워낙 매혹적인 단어여서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 회사들이 그렇게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해 하던 것에서 시작했다. 그 이후로 펜데믹으로 급격히 원격/재택근무로 전환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면서 많은 곳에서 도입을 하는 상황을 사실 약간 신기하게 느꼈었다. 예전부터 원격근무 회사들을 조사하거나 나중에 그런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꽤 있었는데 그런 고민들이 무색하게 펜데믹으로 인한 원격근무는 아무런 사회적 인프라나 조직, 개인들의 준비도 전무한 상태에서 밀려서 되는 양상이었고, 잘 될까 의심스러웠지만 그 와중에 우리 팀에서도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하고자 노력했던 이력도 있었다. 불행히도 회사 정책에 따라 일부 재택근무로 변했다가 지금은 다시 없어졌다고 듣기는 했다.
결론적으로 원격근무가 전 업종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거나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멋지게 해내는 회사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일단 지금까지 했던 고민들을 정리해본다. 펜데믹으로 인한 상황에서는 주로 원격근무보다는 재택근무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여기서는 재택을 포함하는 원격근무로 용어를 혼합해서 사용한다.
재택근무
재택근무는 좀 더 일시적이고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느낌이다. 즉, 사무실 근무를 기본으로 하지만 집안에 일이 생기거나 개인적으로 시간 조정이 필요한 경우에 할당된 기간 안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식의 느낌이다. 재택근무는 필요한 경우 사무실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즉 집에서 근무하는 형태인데, 이게 사실은 무작정 시작하기에 가장 위험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실제 현업의 많은 사람들, 실제 근무를 하는 사람이나 관리자나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거의 쉬는 날로 생각하는 뉘앙스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업무를 보는 메인 위치는 사무실이라 집에서 하는 근무는 좀 더 단순하고 일단 급한 것부터 하는 느낌이랄까? 아마 재택근무 일자가 적을 수록 더 그럴 것이다. 재택근무가 5일중 4일이라면 어찌됐든 재택근무중에도 성과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5일중 1일이 재택근무라면 그 업무 비중에 가벼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격근무
내가 생각하는 원격근무라는 것을 정의하려고 제목을 적기는 했으나, 사실 일반적인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서 일하지 않고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최적의 장소에서 일하는 것. 말은 쉽지만 이제까지 사람들이 일해왔던 방식과 너무 달라서 쉬운 일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원격근무를 위해서 필요한 것 – 조직
원격근무를 하는 팀이나 회사에서 필요한 것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형태의 팀이나 회사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의 근무형식을 바꾸려는, 특히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가지는 회사에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평가
조직에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성과평가”에 대한 명확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업무가 성과를 수치화하고 측정하는게 쉽지는 않겠지만(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들 겉으로 말을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실제 원격으로 근무를 하는 사람도 본인이 고생하고 노력한 것만 알지 동료들의 성과가 없으면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들끼리도 그런데 관리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뻔한 일이다. 가시적이고 수치화된 성과뿐 아니라 정성적이고 필수적인 실패에 대한 성과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역시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업무 평가, 성과평가는 사실 원격근무와 상관없이 늘 거의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격근무에 대한 성과평가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성과평가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무실에 얼마나 늦게까지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평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지…
성과평가에 대한 기준은 회사나 팀이 조직원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는 기대치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상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원격근무로 전환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기존의 평가 기준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좀 더 가시적이고 명확하게 바꿔야 할 부분들은 정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인프라
같은 목적으로 가지고 일하는 팀에서 원격근무으로 전환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환경이 준비가 안되면 필수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속해 있는 IT업계로 예를 들자면 사무실에서만 소스관리가 가능하다던가, 매번 각종 보고서나 서류를 오프라인으로 제출해야 한다던가, 메신저나 프로젝트 관리, 업무용 협업툴도 없는 상태에서 원격근무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많은 회사들이 인프라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게 사실인 것 같고 이런 식으로 별 생각없이 원격근무를 도입하면 업무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일종의 턱이 생기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법은 일종의 사용자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것이다. 직원들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겪게 되는 상황들을 정리하고 원격근무일때 그런 일들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면 좋을지 고민해서 필요한 인프라를 준비하고 활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인프라는 단순히 필요한 하드웨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다양한 툴들과 회사의 프로세스등이 포함된다.
문화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요소, 혹은 성공요소라고 생각한다. 조직의 업무 문화는 일종의 인프라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인프라가 가시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협업 툴과 같은 환경적인 요소라고 하면 업무 문화는 그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업무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원격근무를 하는 팀에 새로운 구성원이 조인하게 될때 제공되는 온보딩과정 자체는 업무 프로세스 자체로 인프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온보딩 과정에서 제공되는 정보의 종류나 뉘앙스, 내용등은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회사에서 업무문화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원격근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부분은 “신뢰”이다.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평가지표나 인프라도 필요하겠지만 정말 조직이 구성원을 신뢰하고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유도하는 방법은 또 다른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신뢰라는 것이 단순히 업무를 할당하고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구성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일이고 구성원들도 다른 구성원들이나 관리자의 관심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원격근무를 위해서 필요한 것 – 개인
성향
원격근무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맞대고 얘기하는 일이 없고 비언어적인 요소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제약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좀 더 액티브하고 세심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다른 관리도 느슨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본인이 본인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본인이 과연 원격근무에 적합한 성향인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원격으로 근무는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랑 화상회의를 하는 것은 싫고, 메신저도 단답으로만 대답하고 마는 성격이라면 사실 같이 원격근무를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화상회의도 더 자주하고 메신저도 더 적극적이면서도 세심하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다. 게다가 자신의 성과도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잘 활용하고 알게 해야 하는 상황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 그런 성향인 사람이 솔직히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원격근무를 하고 싶다고 그런 회사만 고를 것이 아니라, 본인은 그런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는지 잘 할 수 있는지도 같이 체크해볼 일이다.
인프라
사실 우리나라는 원격근무를 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은게 보통 집이 너무 좁다. 물론 원격근무를 하는게 꼭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일을 하거나, 넓은 집으로 귀촌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지금 당장은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카페를 전전하는 것도 사실 한계가 있고 카페나 스터디카페는 본격적인 업무를 하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다.
집이 좁은 것은 물리적 공간이 작아서 업무에 집중할 환경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다는 점도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거나 반려동물과 같이 지내는 작은 공간이라면 그 또한 집중하기 위한 좋은 공간은 아닐 것이다. 원격근무의 장점이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같이 주변에 필요한 순간 자율적인 시간배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업무적인 측면에서 반대로 생각하면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별도의 공간이던, 혹은 작은 사무실이라도 집중하고 업무와 사적인 영역을 분리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원격근무를 위해서 필요한 것 – 가장 중요한 것
인비전의 CEO가 한 얘기에 100% 동감한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지가 아예 없어야만 직원들은 원격 근무제에 적응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내게 된다”
원격근무라는 것이 기존에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근무형태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분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시작하면 사람들은 원격근무에 적응하기 어렵다. 원격근무를 하면서도 많은 일들, 혹은 많은 논의들을 사무실 근무할때 하려고 미루기 쉽상이고 원격근무를 하는 시점에도 업무환경을 최적화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존 사무실 근무를 하면서 원격근무를 준비한다면 원격근무에 대한 다양한 준비와 연습을 하고 실제로 원격근무를 시작할때는 풀타임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달에 한번 오프라인 미팅을 같거나 하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나 여러가지 면에서 필요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근무는 원격근무로 유지해야 한다.
더불어, 원격근무를 하면서 작은 불편함이나 개선사항도 서로 서로 많이 얘기해서 계속 보완을 해나가야 한다. 원격근무를 하는 개인들이 작은 불편함을 그냥 조용히 참고 지낸다면 그것들이 회사나 팀 전체로 모이면 결국 성과에 대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고 역시나 원격근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원격근무를 자리잡게 하려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개선의지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